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내가 본 것은 '상실의 시대'라고 개정하기 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다.
책 제목 바꾸고 나서 수백만부 더 팔렸다고 하니 제목 덕 한번 톡톡히 본다
잘 바꾼 것 같다. 나 역시 '노르웨이의 숲'보단 '상실의 시대'쪽이 더 마음에 든다
예전에 하루키의 단편 '개똥벌레'를 읽은 적이 있다
전체적인 인상은 흐렸지만 맨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덕에
기억하는 소설이다
이 '개똥벌레'라는 단편이 상실의 시대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라고 한다
과연 읽어보니 전반부가 개똥벌레와 똑같다
모티브라기 보다는 '개똥벌레'가 상실의 시대의 일부분이었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개똥벌레 부분에 크게 의지하지 않아
개똥벌레를 늘여놓은 듯한 소설이 안되긴 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다
아니, 하루키의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하루키는 꼭 20대의 피터팬같다
20대의 감성에서 늙지 않는다고나 할까
상실과 방황의 모티브를 참 잘 살린다
그래서 그 감성에 머무를 때에 보면 그만큼 내 얘기인 작가가 없고
그 감성에서 조금 벗어날 때 보면 그만큼 허공에 떠있는 작가도 없다
이게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소설을 써대는 경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가고 있어
점점 별로 읽을 기분도 안나고 읽어봤자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자신의 감성을 놓치지 않고 꼭 잡아두어 점점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것, 나름대로 좋아보인다
다양한 정서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한 가지에서 끝장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프로정신아닌가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자신을 그대로 소설에 묻어내곤 하던데
하루키는 참 변하질 않는다
20대 초반의 방황의 정서를 평생 붙들어 매고 있는 듯 하다
적어도 소설에서는
상실의 시대는 사실 고등학교때 한번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그 때는 별로 책에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나이가 들면 이해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이가 들어서(좀 심하게 많이 든 다음에 읽긴 했다 -_-;)
다시 읽어보니 과연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미 지나왔거나 혹은 아직도 지나가고 있는 터널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느끼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참 가벼우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 마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일본 문학을 공(空)의 문학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공의 문학
다른 나라의 문학과 비교하여 볼 때
그 안에 작가가 추구하는 절대적 진실이나 사회적인 시사나 시대의 흐름이나
그런 것들이 좀 덜들어가는건 사실이다
사회풍자라든가 그런 것들보다는 일본 소설들은 참 개인적이다
그렇기에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스쳐가는 가운데 느끼게 되는 찰나의 느낌들을
보다 많이 느낄 수 있다
가끔씩 머리가 아파서
위대한 진실이나 바람직한 현실상을 들이대는 책들을 보기가 버거울 때
비뚤어졌으면 비뚤어진 대로
일그러졌으면 일그러진 대로
상처받았으면 상처받은 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일본 소설이 보고싶어진다
상실의 시대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을 통해 사회를 계도한다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무언가를 비판한다거나
방황하는 청춘을 사회가 바르다고 인정하는 모습으로 끝내 이끌어내고자 하는 욕구같은 것이 없이
그냥 방황하면 방황하는 대로
어지러우면 어지러운 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표현해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공감받고 싶을 때, 인정받고 싶을 때
지금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거나
내가 가야할 길을 확고히 알고 제대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때
그냥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에(나중에 정신차리고 어떻게 되었다. 짜잔~하지 않고)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성장하는 동안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통을 겪지 않아
지금 내가 이렇게 아픈거라고 이야기하는 나오코의 대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남들 아플 때 제대로 아프고
남들 겪을 때 제대로 겪는 것이
결국 누구나가 거쳐가는 모든 것을 거쳐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결국 이 방황과 정신없음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러니까 '너는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는 것
제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느낌만으로 가득한 시절이
사실은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시절이라는 것
이런 것을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론 마음이 놓이고
한 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이 모든 방황이 끝나는 길에
과연 나는 분명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모두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줄 안다
답변을 해주는 소설도 있고
아닌 소설도 있다
하루키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냥 방황과 상실의 시대에 대한 성실한 보고서를 보여줄 뿐이다
나만 이렇게 헤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너 혼자 알아서 해라. 나도 모른다~' 이렇게 애기하는 듯도 하다
그냥 공감만 하고 끝나는 소설
그래서 공의 문학인 일본 문학
굳이 무언가를 읽으며 무언가를 얻어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때때로 손이 갈 때
소설에 공감하며
공감받은 그 사실 자체만 얻어간다
하루키 역시, 상실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
무려 4년 전에 쓴 상실의 시대의 감상이다. 지금 다시 읽으면 또다른 감상이 나올까? 어쩐지 하루키의 소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듯 하지만 그래도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소설이니 그 때아 비슷한 감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십년이 지났던 십오년이 지났던 여전히 서점가의 스테디셀러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불멸의 소설. 내가 어떠한 감상을 지녔든 상실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 그 자체로 여전히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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